강릉 대도호부 관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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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4년 7월 11일 사적 제388호로 지정되었으며, 면적은 8,423㎡이다. 강릉우체국의 후편에 있는 강릉객사문(국보 제51호) 북쪽 일대가 당시 강릉대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자리이다.
조선 영조 때의 《임영지(臨瀛誌)》에 의하면 임영관은 936년(태조 19) 총 83칸 규모로 창건되었으며, 임영관이라는 관액(館額)은 1366년(공민왕 15) 공민왕이 낙산사(洛山寺) 관음에 후사를 빌기 위하여 신돈과 그의 종 반야를 데리고 왔다가 비에 막혀 강릉에서 10일간 머무를 때 썼다고 한다.
규모는 전대청(殿大廳:9칸), 중대청(中大廳:12칸), 동대청(東大廳:13칸), 낭청방(郎廳防:6칸), 서헌(西軒:6칸), 월랑(月廊:31칸), 삼문(三門:6칸). 조선시대에도 계속 객사로 사용한 임영관은 1584년 이후에만 10여 차례의 중수와 증축을 거듭하였으며, 1927년 일제강점기 때 강릉 공립보통학교가 세워지면서 강제철거되었다.
1993년 10월과 1994년 1월 강릉대학교 박물관 및 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《임영지》의 기록과 일치되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건물터 유구(遺構)가 확인되었다. 확인된 유구는 행랑터 3개소, 회랑터 1개소, 중대청터 2개소, 다자형 석렬(石列)유구, 연도(煙道) 등이다. 또, 11~15세기의 고급 청자편, 16~17세기의 백자 및 분청사기 조각이 출토되었다.
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작업이 추진되었고, 2014년 11월 27일에는 강릉 임영관지에서 강릉대도호부 관아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현재에는 각종 문화 행사와 공연이 열리고 있다.
[네이버 지식백과] 강릉대도호부 관아 [江陵大都護府官衙] (두산백과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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